나의 이야기

비정상적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흔들리는 공공기관

몽유도원 2014. 4. 1. 13:23



"박근혜 낙후한 인식, 어리석기 짝이 없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정상화 대책 도구로 전락했다"

최하얀 기자 


1일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소속 의원들은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와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상화 대책 실행 도구로 전락한 비정상적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8일 본격 시작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그간 정부의 정책 사업을 강요하고 정원을 관리, 노사 관계와 임금을 비롯한 복리후생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컨대 2011~2012년 경영평가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 시기 부채 비율이 급증했던 LH공사의 수자원공사 등이 부채비율 지표 평가에서 고득점을 하며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부채를 키운 주범으로 지목되는 보금자리주택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 사업 등은 주요사업 평가 항목에서 100점 만점의 80~90점을 받기도 했다. 


회견을 연 이들은 "심각한 부채 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는데 그렇다면, 당시 경영 평가는 어떠한 역할을 했느냐"며 "올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영평가가 소위 정상화 대책의 실행도구로까지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보기 : "MB가 만든 '빚', 박근혜가 청산해야")


경영평가를 구성하는 세부 지표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100점 만점으로 이루어지는 경영평가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관련한 사항이 18점을 차지한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이 복리후생 지표(9점)에 할당돼 있고 노사 쌍방의 평가를 반영해야 할 노사관리 지표에 3점이 할당돼 있다. 


회견 주최 측은 "노사관리지표는 비계량 지표로 평가단의 주관적인 의사에 좌우될 소지가 크고, 경영 평가가 1~2점 만으로 등급이 바뀌는 현실이란 점, 노조가 이미 평가 거부를 선언했단 점 등에서 해당 평가는 전혀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최광해 공공정책국장이 최근 '노조의 저항을 극복'할 것, '노조 파업이 있으면 면책' 등의 발언을 한 점을 미루어, 노조를 탄압하고 경영 평가를 강행할 경우 가점이 부여될 것으로 이들은 우려했다. 


경영평가가 지난 2월 평가단 구성에서부터 파행을 빚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들은 "평가단 임명 인사 중 한 명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며 노사 관계를 문제 삼아 무려 4명의 기관장 해임을 건의한 노골적인 반(反) 노조 인사였다"며 "더욱이 지난달 7일 경영평가단 출범 워크숍에서 평가단 노사복리후생팀 15명 중 9명이 복리후생 지표 등에 반발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경영평가는 공정성과 정당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보기 :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 9명 집단 사퇴…왜?)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에 대해 참으로 낙후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노조는 탄압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지난달 26일 대표자회의를 열어 경영평가 실사가 시작되는 시기에 전체 공공기관 노조가 집회와 항의 선전전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투쟁을 공동으로 벌일 것을 결정했다. 노조의 협조가 필요한 지표(노사복리후생 지표 등)에 대한 협조는 일절 거부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회견에는 설 의원 외에도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김현미·조정식·이인영·한정애·홍종학, 정의당 박원석·김제남 의원 등이 함께했다. 공대위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과 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공공연맹과 공공노련, 금융노조로 구성돼 있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흔들리는 공공기관] 정부는 우리에게 ‘골골기관’이 되라 하네

"무조건 줄여라" 닦달에 노동자 사기저하 … “노사갈등 불가피, 공공부문 기능 왜곡 우려”

구은회  |  press79@labortoday.co.kr


매일노동뉴스


#1.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A기관에서 영세업체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교육·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는 조성준(35·가명)씨. 그는 요즘 출근하기가 두렵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료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냥 지치는 거예요. 사명감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자꾸 위에서 어깨를 짓누르니까.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방만경영 해소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소리 없는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A기관만 해도 올해부터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부터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직원들은 전에 없던 경영평가 관련 업무를 할당받고 거의 매일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가 직원 복리후생 차원에서 내주던 상해보험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합니다. 대신 1년에 사용한도가 50만원에 불과한 복지포인트에서 보험료를 차감하겠다고 하네요. 액수는 얼마 안 되지만 사실상 임금이 줄어드는 겁니다. 정부 말대로 일부 방만한 기관도 있겠죠. 하지만 안 그런 곳도 많아요. 요즘 같아선 정말 일할 맛이 안 납니다.”


#2. 정부 방침에 따라 직원들을 닦달해야 하는 관리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부처 산하 B공단에서 인사·노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박정민(51·가명)씨. 기재부가 제시한 공공기관 방만경영 8대 영역 체크리스트에 따라 ‘무엇을 없앨지’ 결정해야 하는 악역이 그에게 주어졌다.


“기준에 맞춰서 줄이라는데 피할 방법이 있나요. 특목고 자녀들에게 지급되던 학자금을 국공립학교 수준으로 낮추고, 감기 같은 소소한 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받은 직원과 가족에게 지급되던 진찰비 중 가족지원분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진료비라고 해 봤자 5천원 정도 나가던 건데….”


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방만경영 가이드라인은 국가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을 뛰어넘는 항목들을 ‘과도한 복리후생’으로 간주하고 있다. 공무원보다 휴가일수가 길면 줄여야 하고, 결혼을 하거나 상을 당한 직원들에게 경조사비도 지원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체크리스트 항목이 55개나 된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병원비 5천원 덜 준다고 방만경영이 해소되나요. 정부는 자꾸 ‘줄여라 줄여라’ 하는데, 줄일 게 있어야지 줄이죠. 공무원 수준으로 맞추라고요? 공무원은 진작부터 정년 60세를 적용하고 있으면서, 우리한테는 정년 늘려 줄 테니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는 거잖아요. 이런 것부터 공무원 수준에 맞춰 주면 안 됩니까?”


“공무원만큼만 받으면 소원이 없겠다”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군기잡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정부에 의해 공공부문에 대한 ‘철밥통’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면서, 공공부문의 실질적인 주인인 국민이 공공부문을 불신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굳어져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온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이 소진되고 있다.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는 A기관 조성준씨의 하소연은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한다. “일할 맛이 안 난다”는 말은 곧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업무동기와 성과의 상관관계를 살핀 국내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민간부문 종사자들에 비해 공익의 증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보다 처지가 불우한 타인의 복지가 향상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이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이 잘 발휘될 때 업무성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의욕을 꺾는 정책으로는 효율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정부가 중점관리기관으로 지목한 38개 공공기관이 지난달 제출한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안’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기관 대부분이 △업무상 부상·사망시 퇴직금 가산지급 폐지 △자녀 교육비·보육비 폐지 또는 축소 △가족 의료지원비 폐지 △경조사비와 장기근속자 포상 폐지 △휴가·휴직 축소 등을 계획안에 넣었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한국마사회는 노사 동수로 돼 있는 고용안정위원회의 노조측 위원을 줄이고, 의결기준도 3분의 2 찬성에서 과반 찬성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고용안정위원회 노사 동수 조항을 아예 삭제할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경영상 해고시 노조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고,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서만 구조조정 결정권을 인정하던 조항도 없애기로 했다. 


이 밖에 한국예탁결제원·한국가스기술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한국전력공사가 구조조정시 노조로부터 동의를 구하도록 한 단협 조항을 ‘협의’ 조항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국가스공사는 경영권이 이전될 경우 고용을 보장하고 단협을 승계하도록 의무를 부여한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노동조건의 악화, 고용불안의 심화다. 공공부문 노사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줄이고 줄이다 ‘구조조정 요건 완화’까지


통상적으로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민간부문 노사관계와 다른 양상을 띤다. 가장 큰 차이점은 사용자가 불명확하고, 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기관장의 자율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노와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고, 특정 기관의 노사 대표가 교섭을 벌이더라도 실제로는 정부로 대표되는 상위기관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면교섭’의 특징도 나타난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공부문 관계자들로서는 예고된 충돌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황추연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안전보건공단지부 위원장은 “최근 공단 본부가 울산으로 이전함에 따라 업무의 안정화와 직원들의 생활안정이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가 합심해도 모자란데, 자꾸만 쥐어짜라고 주문하는 정부 지침이 노사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손종배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산업인력공단지부 위원장은 “기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의 경우 방만경영과는 거리가 멀고, 정부 역시 이를 모르지 않는다”며 “일괄적으로 시행되는 공공부문 정상화 대책이 노사 간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개입이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사갈등의 가능성은 노동부가 내부용으로 작성한 ‘방만경영 개선 요구에 대한 노조의 수용 가능성’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정리된 해당 보고서는 기재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방만경영 가이드라인의 개별 항목을 ‘수용가능성 낮음’(1~2점), ‘중립’(3점), ‘수용가능성 높음’(4~5점)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노동부는 ‘채용·전보 및 구조조정시 노조동의 금지’ 항목을 1점으로 분류했다. 노조의 수용가능성이 희박하고, 그만큼 노사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 밖에 △순직시 유족들에 장제비 지급금지 △경조사비 과다지원 축소 △장기근속자 포상제도 폐지 △중고생 교육비 지원 축소 △본인 의료비 지원금지 등의 항목을 2점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항목을 손보려면 단체협약을 개정해야 한다. 상당수 기관이 올해 연말까지 기존 단협의 효력이 유지되는 상황이므로, 단협을 개정하려면 임금·단체협상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적지 않은 기관이 노조를 상대로 조기교섭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다. 반면 교섭요구권을 갖고 있는 노조들은 노동조건 개악을 전제로 한 교섭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사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효율 만능주의’ 괴물이 삼켜 버린 ‘공공성’


문제는 국가의 개입으로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불안해질수록 공공부문을 매개로 이뤄지는 국가의 기능이 왜곡되기 쉽다는 점이다.


기타공공기관인 C기관에서 경영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최수진(가명·49)씨는 “올해부터 기타공공기관에 도입되는 경영평가에 대비해 전담인력을 충원할 계획”이라며 “평가점수를 높게 받는 데 사업의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고, 우리 기관 고유의 사업들이 질보다는 양에 의해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민원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사업의 경우 그동안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데 공을 들였지만, 앞으로는 일자리의 질을 따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을 취업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이처럼 효율성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공공부문의 본질적 속성인 공공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유병홍 고려대 교수(노동대학원)는 “정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공공부문 옥죄기로 해당 노동자들은 불만을 넘어 일종의 체념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며 “종사자 개인으로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성이나 효율성에도 마이너스 효과를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개인의 불행이 집단적 관계로 확대되면 노사갈등이나 노정갈등을 피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정부 역시 이러한 부작용을 모를 리 없는데도 공공부문을 장악하고 노조를 길들이려는 유혹에 빠져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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