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역사-김삼웅·한시준

후기의병 항쟁의 전개 / 후기의병의 확산 / 한말 후기의병

몽유도원 2014. 4. 12. 18:30

제4장 후기의병의 확산


후기의병 항쟁의 전개

강원·경기도의 의병항쟁

경상·충청도의 의병항쟁

서북지역의 의병항쟁

전라도의 의병항쟁


1. 후기의병 항쟁의 전개

1907년 7월 고종의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의 체결로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곧이어 전격적으로 단행된 군대해산조치에 반발한 시위대와 진위대의 무장봉기가 이어졌다. 해산을 거부한 군인들이 전국 각지의 의병부대에 합류하거나 독자적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전국의 산과 들에는 의병의 함성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의 식민지화를 눈앞에 둔 일제는 의병항쟁이 거세게 타오르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의병 진압에 나섰다. 그들이 1907년 후반을 기점으로 엄청난 분량의 진압 기록을 남긴 점만 보더라도 그러한 상황을 알 수 있다. 註1)

이들 일제측 자료는 대체로 후기의병의 시기별 추이와 도별道別로 의병활동을 파악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08~1909년 사이의 교전횟수와 교전의병수가 도별로 파악되어 있는데 아래와 같다. 註2)


〈표 1〉 도별 교전횟수와 교전의병수(1908년 후반~1909년 전반)

도별/구분교전횟수(%)교전의병수(%)
1908190919081909
경기도78(4.0)165(9.5)1,453(1.8)3,453(8.9)
충청남도217(11.0)138(7.9)7,666(9.3)1,003(2.6)
충청북도113(5.7)66(3.8)6,815(8.2)832(2.2)
전라남도274(13.9)547(31.5)10,544(12.7)17,579(45.5)
전라북도219(11.1)273(15.7)9,960(12.0)5,576(14.5)
경상남도153(7.7)61(3.5)3,328(4.0)934(2.4)
경상북도158(7.9)161(9.3)5,702(6.9)3,667(9.5)
강원도273(13.8)124(7.1)18,599(22.5)2,468(6.4)
황해도232(11.7)111(6.4)7,998(9.7)2,148(5.6)
평안남도108(5.5)61(3.5)1,391(1.7)540(1.4)
평안북도41(2.1)17(1.0)2,590(3.1)123(0.3)
함경남도99(5.0)14(0.8)6,438(7.8)270(0.7)
함경북도11(0.6)-283(0.3)-
합계1,9761,73882,76738,593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1, 1965, 295~296쪽.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1908년에는 강원도·전라남북도·황해도의 의병활동이 두드러졌으며, 1909년에는 전라남북도의 의병활동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장에서는 지역별 의병항쟁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후기의병의 활약상을 네 개의 지역으로 크게 분류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강원·경기 지역, 경상·충청 지역, 서북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부대의 활동을 정리하되,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의병항쟁을 전개한 전라도의병은 따로 정리할 것이다. 각 지역별 대표적인 의병부대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지역별 의병항쟁의 개략적인 흐름이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후기의병의 경우 중기의병의 연장선상에서 반일투쟁의 연속적 측면을 고려하며 서술할 것이다.


[註 1] 후기의병의 진압에 관한 일제측의 가장 방대한 자료는 『폭도에 관한 편책』(내부 경무국, 1907~1910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8~19, 1979~1990)이며, 『폭도사편집자료』(내부 경무국, 190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 1971)와 『조선폭도토벌지』(조선주차군사령부, 191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 1971)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1』〈의병항쟁 재판기록〉(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통감부문서』 1~10(국사편찬위원회, 1998~2000), 『전남폭도사』(전라남도 경무과, 1913 ; 이일룡 역, 『비록 한말전남의병투쟁사』, 전남일보인서관, 1977) 등 엄청난 분량의 의병관련 자료들이 남아 있다. ☞

[註 2] 『대동공보』는 1908년에 일제와 투쟁한 의병규모를 약 87,000명으로 파악했으며, 의병전사자 5,700여 명, 일본 군경의 사상자수를 약 10,000명 등으로 파악하였다(1909년 3월 14일자). 의병의 규모와 접전회수에서는 일제의 통계와 비슷하나, 일제 군경의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동공보』는 일본군의 피해가 큰 이유를 의병들이 지리에 익숙한데다 용감하다는 점을 들었다. 한편 『대동공보』는 각 도별 수치를 제시한 후에 의병의 규모를 87,258명, 접전회수를 1,942회, 의병의 전사자를 5,711명, 일제 군경의 사상자를 10,707명으로 게재하였다. 따라서 각도별 통계나 최종 집계 가운데 약간의 誤記나 誤植이 있는 듯하다. 참고로 『대동공보』의 기사를 표로 만들어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1908년 전국의병의 규모와 전과 및 피해

 
/도별
의병수접전
회수
의병 
전사자
의병
포로
피탈
총기
일본군경
사상자
의병 노획품
총기속사포
경기1,45378266944131144
충북6,8151133948114867221 
충남7,6662179731411701,322743
전북9,96021950914936172332 
전남15,0442747151805272,07153 
경남3,3281532053518318139 
경북5,7011584828178835579 
강원18,5992731,2951521,0922,7726125
황해7,9982325891942785967 
평남1,391108112211037124 
평북2,59041101318023265 
함남6,430693034830157487 
함북2831133246843 
총계87,2581,9465,7071,0104,24810,0311,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