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역사-김삼웅·한시준

연구 목적과 방향 / 한말 후기의병

몽유도원 2014. 4. 12. 18:08

제1장 연구 목적과 방향


연구 목적과 방향

일제의 국권침탈은 19세기 후반부터 대한제국이 패망한 1910년까지 단계적으로 매우 치밀하면서도 집요하게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 최종단계는 1907년 중반부터 진행되었다.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으며, 이른바 정미7조약의 체결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중앙과 지방의 행정기관을 장악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의 침략 자본은 대한제국의 도시와 농어촌의 경제적 토대까지 급속히 잠식하였다. 1907년 8월 1일 일제는 한국군을 전격적으로 강제 해산하였다. 일제의 이러한 국권 침탈에 항거하여 후기의병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모든 산과 들이 의병과 일본 군경의 전장戰場화됨으로써 의병전쟁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註1) 비록 1910년 8월의 경술국치庚戌國恥를 전후하여 국내의 의병활동은 위축되었지만, 3·1운동이 일어나던 무렵까지 의병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註2)

국내에서 활동하던 일부 의병들은 간도와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이른바 ‘북계책北計策’에 의거하여 장기항전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국외에 항전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당시 해외로 진출한 의병들이 훗날 독립군의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전개한 후기의병은 그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다. 일제는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던 1907년부터 5년 동안 의병의 규모를 약 14만명으로 추산하였다. 註3) 또한 일제는 1907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학살된 의병의 숫자를 약 15,000명으로 집계하였다. 註4) 이러한 통계만으로도 당시 후기의병의 규모와 심각한 피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제국기 의병항쟁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비교적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고, 최근에는 연구사 정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註5)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에 의해 의병이 일어난 정치적 배경에 관해서는 대체로 학계의 의견이 모아진 편이다. 또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관해서도 점차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다. 특히 의병전쟁의 전개과정과 활동에 관하여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짐으로써 대표적인 의병장의 사상이나 행적, 주요 의병부대의 활동이나 구성원의 특징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의병전쟁의 주도세력과 구성원의 신분이나 직업, 연령 및 편제상의 특징 등과 같은 특정 주제에 대한 정밀한 접근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더욱 참신하고 다양한 시각에 의해 의병전쟁의 성격이나 의병의 개념·특징 등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특정한 주제 중심의 접근방법이나, 지역간 비교연구 등이 그것이다. 또는 학문적·지리적으로 동일한 생활문화권을 형성한 지역 단위로 전개된 의병활동에 대한 분석도 진행되었다. 당시 의병들은 학파를 배경으로 하거나, 도道 단위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상호 긴밀한 연계망을 구축하거나, 연합전선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정한 거점을 확보한 후 인접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진義陣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새로운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글은 시기적으로는 1907년 7월부터 1915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던 의병항쟁에 관한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제주도에서 두만강 이남, 즉 국내에서 펼쳐진 후기의병의 구국활동을 살피고자 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먼저 후기의병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검토할 것이다. 다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구체적인 활동상과 그에 따른 일제의 대응이 어떠했는지 알아보겠다. 끝으로 후기의병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후기의병의 지칠 줄 모르는 항일투쟁의 눈부신 활약상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한 활동의 구체적 면모를 살펴보기 위한 방법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도별 의병항쟁의 개황과 대표적인 의병부대의 사례를 통해 후기의병의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지면 관계상 전국의 산과 들, 바다와 외딴 섬까지 발길이 닿았던 후기의병의 총체적 활동을 담아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註 1] 『대한매일신보』(한글판) 1907년 9월 5일 「한국안에 젼쟁」. ☞

[註 2] 조동걸, 『한국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89, 49~50쪽. ☞

[註 3] 조선주차군사령부, 『朝鮮暴徒討伐誌(이하 『토벌지』)』, 191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3(이하 『자료집』 3), 1971, 827~829쪽 참조. ☞

[註 4] 『폭도에 관한 편책(이하 『편책』)』(국가기록원 소장, 문서번호 88~19), 1121쪽. ☞

[註 5] 김상기, 「조선말 의병전쟁 연구의 현황과 과제」, 『의병전쟁연구』 상, 지식산업사, 1990 ; 강길원, 「의병운동 연구」, 『한민족독립운동사』 12, 국사편찬위원회, 1993 ; 김상기, 「의병전쟁에 대한 연구성과와 과제」, 『한국사론』 25, 국사편찬위원회,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