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역사-김삼웅·한시준

제5장 중기(1919~1931)의 독립운동, 1920년대의 독립운동단체/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몽유도원 2013. 1. 7. 21:51

제5장 중기(1919~1931)의 독립운동


1920년대의 독립운동단체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재만독립전쟁의 전개와 특징

신간회의 설립과 해소


1. 1920년대의 독립운동단체


그렇다면 이러한 민족지성의 표현이 1920년 민족운동 註1)조직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었던가. 1920년의 민족운동 조직 가운데에서 비밀지하단체만을 대상으로 검토하면, 註2) 임시정부·재만독립군在滿獨立軍·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여성단체 등의 네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註3)

임시정부 계열조직은 주비단籌備團, 서울·鳳山·瑞興·載寧·숭의단崇義團, 成川·順川·농민단農民團, 江東·의용단義勇團, 서울·平壤·中和·長淵·松禾·海州·진명단盡命團, 德川·신민단新民團, 安州·결사대決死隊, 鳳山 등이 있었다. 임시정부 지방조직인 연통제聯通制 조직과 연결된 경우가 많았고, 인원모집·정보수합·군자금 모금·무장투쟁을 표방한 것 등의 특징이 있었다. 문서를 보면 국민이란 호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한 외에는 비밀활동이나 투쟁요강을 나타낸 정도의 것 외에 이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없다. 이러한 성격은 재만독립군계열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재만독립군계열은 사천청년회沙川靑年會, 강서·용만청년회龍灣靑年會, 의주·해동청년회海東靑年會, 함흥·의용대義勇隊, 함흥·자유회自由會, 덕천·영변뿐인데 만주는 인접하기 때문에 독립군 조직원이 직접 파견되어 있어 국내에서 독자 조직은 발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외에 해외독립운동을 주로 재정이나 선전활동으로 지원한 지하조직으로 비현청년단枇峴靑年團·대한민회大韓民會·구민단救民團·청년단靑年團·백마단百馬團·애국청년단愛國靑年團·국민회·전도회傳道會·대한민국회大韓國民會 등이 있었다. 노선은 무장조직보다는 온건한 편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다음으로 대한국민회계열은 국민회國民會·향촌회鄕村會·활동단活動團 등의 명의로 평강平江·강동江東·강서江西·황주黃州·송화松禾·순천順川·맹산孟山·용강龍岡·성천成川·진주晋州·거창居昌·마산馬山·통영統營·대동大同·곡산谷山·수안遂安·평양平壤·덕천德川·영원寧遠 등의 지역에 결성되어 있었으나 1920년 또는 1921년에 거의 발각되고 말았다. 그 활동 성격은 임시정부계열과 거의 같았다.

그리고 지하 여성단체는 부인회婦人會·여자구락부女子俱樂部·결백단潔白團이 있었다. 그 외에 용골단龍骨團·건국단建國團·일심단一心團·용진단勇進團·중흥단中興團·결의단結誼團·혈성단血誠團 등 자료에 분명한 성격이 밝혀져 있지 않은 지하단체가 있었는데 단체 이름으로 보아 앞의 여러 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919년에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 등의 전국적 지하조직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1920년에는 일제의 탄압이 가중된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이 아닌 지방별 행동조직이 확산된 것으로 변천하였다.

그리고 거의 서울 이북지방에 편재해 있었다는 것, 모두 독립쟁취를 위한 투쟁조직이었는데 봉건주의 항일단체가 없었다는 점 등이 주목된다. 봉건단체가 없었다는 것은 여성비밀단체가 대두되고 있었다는 것과 또 여러 단체들이 구시대의 양반세가 약한 서북지방에 편재해 있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근대적 민족지성이 크게 앙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1920년대 지상 논설에서 보여주었던 사회개조의 인도주의나 민주주의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각 단체의 행동강령은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민족의 독립쟁취가 당장의 급선무였다는 인식의 반영이기도 하고, 독립을 쟁취한 연후의 문제를 나타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조직 성향을 통하여 기억해 둘 것은 민족의 독립이 어떤 지성보다 상위개념에서 이해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지상논설에서 나타난 식민지 계급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과 성격을 같이하는 점이고 그것은 식민지 민족지성의 특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