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의 역사-김삼웅·한시준

제1권 한국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 - 편찬사, 이만열

몽유도원 2013. 1. 3. 15:36

편찬사


오랫동안 기다리던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간행하여, 조국 독립을 위해 살신성인하셨던 선열들께 헌정하게 된 것을 7천만 민족과 더불어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조국광복 60주년에 계획을 수립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간행을 완료하기로 하고 착수했던 사업이다. 이는 광복6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국민적인 사업인만큼 이에 대한 각계각층의 기대와 관심 또한 매우 높았다. 이 사업이 차질없이 이룩되어 민족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금자탑이 되기를 기원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선열들의 항일독립투쟁은 세계사에 그 유례가 많지 않은 떳떳한 역사로 남아 있다. 제국주의 시대, 세계에는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처럼 일제강점 전 기간 동안 끈질기게 독립투쟁을 벌인 경우는 흔치 않다. 독립운동 방략도 다양했다.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우방 제국과 연합하여 투쟁하거나 혹은 무장·외교투쟁으로, 혹은 실력양성운동으로 불법 강점자들과 싸웠다. 이념이 다른 경우에도 조국광복이라는 대의 아래 연합전선을 도모하였다. 이런 자랑스런 독립투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후예들은 그 역사를 정리하기에 게을렀고 주저했다. 독립운동에 목숨까지 바쳤던 선열들의 그 심정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임했던들 상황과 여건을 탓하면서 이렇게 지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복 60년, 경제성장에 국가적 체모는 어느 정도 갖췄다고는 하나 독립운동사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이는 조국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생명까지 바친 선열들께는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도 부끄러움 그것이었다.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 독립된 민족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과업은 식민지시기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하고 ‘식민지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다. 이는 독립운동과 독립정신으로 나라의 자주권을 바로 세우고 민권과 국권을 일신하여 새로운 사회를 이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의 최우선 과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립운동사를 정리하는 토대 위에서 ‘식민지잔재’를 청산하는 일이 병행되었어야 했다. 이것은 곧 식민지하에서 이지러진 나라의 체모를 창조적으로 회복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러한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광복60주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과 과거사를 규명하는 활동이 본격화되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독립운동사 정리는 ‘식민지잔재 청산’과 다른 차원에서 새 조국 건설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해방 후 ‘식민지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였듯이, 독립운동사의 체계적인 연구 작업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외형적인 일제강점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것과는 달리, 해방 후 친일파가 온존하여 지배층으로 등장하는 분위기에서는 식민지하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 편찬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당시 역사학계가 독립운동사 연구를 학문적인 영역으로 대담하게 끌어내지 못한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역사학계의 역사의식 수준과도 관련되는 문제였다. 독립운동사에 대한 역사의식의 정체는 결국 ‘일제잔재 청산’의 실패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적 차원에서 독립운동사 연구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독립국가건설론을 둘러싼 극심한 대립 갈등이 이런 사업의 추진을 저해한 데다가 분단과 한국전쟁은 올바른 독립운동사 연구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마저 증폭시켰다. 해방 후 일정 기간 동안 개인의 회고담 수준 이상의 독립운동사를 대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정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정부 지원하에 1만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독립운동사가 정리·편찬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은 물론 당시까지 연구업적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에서도 해방 이후에 ‘혁명운동사’란 이름으로 항일독립운동사를 편찬한 바 있다. 그러나 국토 분단과 남북한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역사 연구에 투영되면서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온전한’ 독립운동사 편찬은 한계를 드러냈다. 남북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 사회주의·공산주의계열이나 민족주의계열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나 혹은 사실 차원을 벗어난 지나친 미화 등도 있었다. ‘저항’에 치중된 역사인식은 다양한 독립운동론의 의미를 도식화시키거나 사상시켰다. 영웅주의사관에 입각한 독립운동가 미화도 독립운동사 인식을 저해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새롭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던 저간의 정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1960년대 이래 식민주의사학의 비판·청산과 민족주의사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가 고양되면서 독립운동사 연구는 한층 활기를 띠게 되었다. 회고담 수준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문헌적인 뒷받침을 통해 과학적인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독립운동 연구의 제 1세대가 나타났다. 성과물은 1970년대의 독립운동사로 정리되었고, 이어 국사편찬위원회도 1980년대 후반부터 자료집 편찬에 중점을 두고 독립운동사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권 의 변화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는 그 동안 거의 접근조차 불가능한 독립운동사의 생생한 자료들을 대량으로 수집할 수 있게 했다. 종래 일제의 관변 자료 등 제한된 자료에 입각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수준은 새로운 단계로 확대·심화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운동 연구의 제 2세대는 이런 변화 속에서 양성되었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1970년대 이후 산발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독립운동사의 전 시기와 분야를 체계화하려는 데서 1차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면서 후진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한 선각적인 제 1세대 연구자들의 연구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를 선도했던 밑거름이자 뼈대를 형성시켜준 노작들이었다. 이들 제 1세대로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사 연구는 망국 시절에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국권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불살랐던 독립운동가들께 그 투쟁에 걸맞는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의미도 또한 지니고 있었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의 주체성과 정통성을 확립하는 의미도 지닌다. 이를 바탕으로 갈등과 분단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를 화해와 포용, 평화와 번영에 입각한 통일시대 한국사로 이끄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 편찬사업은 또한 민족적인 개성과 국가적 주체성에 입각하여 ‘세계화·개방화’ 시대에 조응하고 정의와 평화에 기초한 세계사적 보편성에 접근하는 귀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또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펴내면서 우리는 과거 식민지배를 받았던 민족과 국가들에게는 그들 자신들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한 토대 위에서 자신들의 주체성을 강고히 함과 동시에 세계평화를 선도하는 계기를 만들도록 기원한다. 아울러 침략을 일삼던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반성·참회하는 계기를 만들면서 세계평화에 적극 협력하는 데에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갖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계획되었다. 이에 앞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2000년부터 예산을 확보하고 총 33권으로 된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을 계획하는 등 학계의 중지를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국가보훈처는 2004년부터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발간사업을 다시 착안, 이를 광복60주년기념사업과 연결시켜 기획하게 되었다. 다행히 범정부적 차원의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한국독립운동사 간행을 광복6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채택하고 예산을 지원하게 되어 이 편찬사업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이 광복6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것은 선열들의 독립운동사를 기필코 정리해야겠다는 우리 국민들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독립운동사학계를 중심으로 한국 역사학계는 2005년 6월 1일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국민적 사업에 닻을 올렸다.

광복6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는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은 그 의미를 담아 총 60권의 총서 형식으로 기획했다. 60권의 전체적인 내용은 먼저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침략상과 강점 지배의 행태를 단계적으로 먼저 다루고, 거기에 저항·투쟁하면서 국권을 수호·회복하려는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다각도로 다루었다. 한국인의 독립운동은 개항기의 일제 침략에 맞서 투쟁한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먼저 다루고 이어서 일제강점기의 국권회복·독립투쟁을 다루는 형식으로 편차를 짰다. 일제강점기의 국권회복운동은 3·1운동에 이르는 1910년대의 항일독립운동과 3·1운동 이후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외교운동, 초기의 무장투쟁과 의열투쟁, 국내의 민족역량 강화 운동을 포함한 각계의 독립운동 그리고 국외의 제반 항일무장투쟁, 독립국가 건설운동 등을 망라하였다. 국내외 항일유적지를 다룬 것은, 만시지탄이 있지만, 잊혀져 가고 있는 선열들의 활동지역을 보존하여 후손들과 세계사에 제대로 전수해야겠다는 염원 때문이다. 특히 종래 분단과 이념적 대결로 불모지 상태로 방치했던 사회(공산)주의계와 아나키즘계의 독립운동과 좌우합작운동 등을 대담하게 포괄할 수 있게 된 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통해 쟁취한 사상·학문 자유의 과실이면서, 남북화해 분위기의 변전과 함께 주어진 자신감의 표현과도 관련되어 있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는 독립운동사 연구의 1~2세대가 힘을 모아 이룩한 학문적 성과다. 집필에는 83명의 학자가 참여했지만,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못한 연구자들이 있음을 밝혀둔다. 이 방대한 작업을 위해 편찬위원회에서는 먼저 집필자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집필자 전원이 참석하는 몇 차례의 워크숍을 시도했다. 60권의 개별 집필에 앞서 각 집필자가 자신의 집필 방향과 목차를 내 놓고 다른 집필자의 내용과 서로 비교 검토하고 전체의 방향을 조율하였다. 이는 편찬의 의미를 공유하고 편찬 방향을 숙지하여 이런 거대한 작업에서 흔히 나타나기 쉬운 중복과 충돌을 피하는 한편 총서가 의당 가져야 할 통합성과 일관성 및 균형성을 고양하자는 취지에서였다.

『한국독립운동의 역사』를 간행함에 감사할 분들을 기억한다. 먼저 조국 독립운동에 유명 무명으로 참여한 많은 선열들께 거듭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표한다. 그들 선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세계 앞에 떳떳할 수 있다. 광복60주년을 맞아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편찬을 국민적 인 기념사업으로 성원해준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여러 의식 있는 분들과 그 지원을 담당한 국가보훈처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 사업 추진에 앞장 선 독립기념관과 기획사업을 성사시킨 추진주체인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이하 연구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집필에 참여한 여러 학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편찬위원회 위원들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도 이 출판을 맡아준 경인문화사와 직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해방 독립된 지 60년이 되어도 독립운동의 역사조차 제대로 체계화하지 못한 부끄러운 후예들이라는 자각이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간행을 계기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지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부끄러워했던 우리 세대가 이 사업의 완성으로 역사 앞에 자그마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면, 우리 후손들도 기꺼이 용납해 줄 것으로 믿는다.

2007년 12월 10일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 만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