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멸종위기종 정치인] 기초연금법 처리에 반발해 사직서 제출한 김용익 의원

몽유도원 2014. 5. 15. 12:19


"여러분은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이 복지·정치와 결별하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야당이 여당의 법안을 통과시켜 주기 위해 하루 동안에 보건복지위원회,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까지 통과를 시켜주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이 과정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의총이 끝나면 의원직 사직서를 써서 제출하겠습니다."

지난 2일,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말을 남긴 후 의총장을 떠났다. 새정치연합이 앞장서 정부 여당의 기초연금법안 처리를 돕는 것에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원직 사퇴'라는 강경 카드에 혹시나 지도부가 마음을 바꿀까 기대했지만,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다. 이날 기초연금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사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직후, 김 의원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의원은 "기초연금법을 양보해주면서 국민에게 내놓을 거리를 얻었어야 했는데, 지도부는 얻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처리하는 과정은 매우 굴욕적이었다"라며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다"라고 토로했다.

"기초연금법과 '세 모녀 3법'과 장애인연금법을 묶어서 처리하자고 건의 했지만,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양보에도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건데, 이번 건은 진짜 한심했다"라며 "참패했다"라고 일갈했다. 

사직서를 낸 후 일주일, 국회를 떠나겠다는 김 의원의 뜻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가을 이후 당이 한 일이 없다,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실망감이 기초연금법 처리 과정에서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그는 "김한길 대표가 사직서 철회하라고 강권한 후 본인이 강창희 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다시 찾아왔더라, 여야간 합의가 없으면 본회의도 안 열리고 사직서 수리도 안 되는 판국에 사직서가 어디있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라며 "차라리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텐데 당에서 접수를 안 받을 거 같다, 사퇴하려고 해도 방도가 마땅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제명'이다. 당에서 제명되면 김 의원은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김 의원은 "국회는 나가기도 어렵다, 사직 처리가 안 되는 상황이니 제명해주면 최선을 다해 무소속으로 일하겠다는 뜻을 담아 의원들에게 편지를 썼다"라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될 게 두렵다, 그래서 약속의 반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직을 사퇴하지도, 그렇다고 유지하지도 못하는 현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그를 짓누르는 듯 보였다. 김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는 미안하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내 거취를 두고 자꾸 당에 부담을 주는 거 같아 괴롭다, 착잡하다"라고 말했다. 

"복지와 결별하고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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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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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용익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기초연금법안이 통과된 2일 밤, 의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기초연금에 대해 우리 당의 당론(국민연금과 연계없이 소득 하위 80%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는 안)을 지켜야 한다는 쪽이었다. 우리 당 안이 맞다는 확신이 있었다. 새누리당 안은 기본적으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사람은 국민연금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만큼을 깎아서 줘야 한다는 안이다.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그래도 현실세계에서는 전략적인 타협을 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 사각지대 발굴법' 등 세 모녀 3법과 장애인연금법을 기초연금법과 묶어서 처리하는 것을 출구전략으로 생각했다. 지도부에 이 안을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지도부는 기초연금부터 처리하고 나머지 법은 따로 처리하는 게 좋다며 반대했다. 

납득할 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기초연금법이 처리된 후에 네 가지 법을 처리할 협상력이 우리에게 있나? 말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가난한 노인과 빈곤층에게 한 푼이라도 더 줄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얻어 보려고 혼자서 복지부와 교섭했다. 장관이 이와 관련 1조 원 정도의 계획서를 가져왔고 실무적인 논의를 통해 1조5000억 원까지 (지급 가능하게) 논의가 진행됐다. 당 지도부가 나서서 노력해주면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양보하는 대신 지금 당장 기초생활보장, 장애인 연금, 긴급 구호 등에 대해 법을 고쳐 1조 5000억 원 가량의 재원을 확보했다고 국민에게 설명하면 이를 양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2일 하루 동안 복지위,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 일괄 처리할 기세였다. 그래서 그날 의총에서 '제발 새 원내대표가 맡아서 처리하게 하자'고 했지만… 도저히 될 상황이 아니어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혹시라도 지도부가 마음을 돌려서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하길 기대했다. 물론 의원직을 사퇴하면 내 입장이 매우 곤란해질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감행했다. 결국 그 날 기초연금법이 통과됐다." 

- 이번에 통과된 기초연금법안,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나. 
"새누리당안이 통과되어도 그건 시한부안이다. 날이 갈수록 국민연금 20년 이상 가입자 비중이 늘어나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나라에서 나가는 돈은 줄어들게 된다, 그게 여당의 의도다. 이렇게 되면 현재 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다음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조차 기초연금 20만 원 일괄 지급 공약을 할 가능성이 높다. 

길게 봤을 때 이 제도의 수명은 길지 않을 거다. 내가 분노하는 건 기초연금법을 양보해주면서 국민에게 내놓을 거리를 찾아왔어야 했는데 얻지 못했고, 얻으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걸 처리하는 과정이 너무나 굴욕적이었다는 데 대한 불쾌함과 부끄러움이다. 복지와 결별하고 새정치와 결별하려는 당의 모습에 분노했던 것이다." 

- 기초연금법이 통과되는 순간, 어떤 심정이었나. 
"굉장히 우울했다.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었다. 몇 달전부터 고민해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그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한 일도 아니었다.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8일 새 원내대표 선출 이후에 진행만 했어도 사퇴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새 사람이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전략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거고,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가 상시국회를 제안했고 18일까지는 국회가 열려있으니, 5월 내내 국회가 열려있을 가능성이 컸다. 2일에 급히 결정 안 해도 이후에 논의해서 지방선거 전에 결말을 낼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다."

- 원내 지도부 측은 '새누리당은 기초연금법 처리하지 말라, '배째라'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받아낼 게 없다'고 하더라. 새정치연합이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초연금법 처리가 안 된 상태에서 지방선거를 치렀어야 했다. 이미 세월호 때문에 모든 이슈가 그 쪽으로 흘러갔고 정세분석가들도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이외의 것들이 쟁점화되리라고 보지 않고 있었다. 기초연금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경로당에 못 들어가 선거에 질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초연금 처리에서 새누리당이 배째라고 나오면, 통과가 안 됐을 시 그게 무조건 야당 탓이 되겠나. 야당만 일방적으로 욕 먹는 상황은 아니었다.

양보를 하더라도 양보의 방식이라는 게 있는 거다. 하루 동안 야당이 자발적으로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를 거쳐서 여당안을 처리하게 해준다는 거 자체에 납득이 안 갔다. 진짜 한심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내가 무슨 힘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나. 싸움을 걸면 일단 이겨야 하고 최소한 비겨야지. 그런데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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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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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사퇴 의지, 변함없다"

- 당에 실망해온 것이 계속 됐나.
"지난 가을 이후 우리 당이 한 일이 없다. 야당으로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러니 실망감도 있다. 또 계파 청산이라든지 당 내부를 개혁해 당이 합리적이게 되길 바랐고 이를 위해 노력도 했는데 거의 진척된 게 없다. 당을 개혁해 야당으로서 역할을 다했어야 했는데 이를 못한 부분들이 바탕에 깔려있다.

물론 이런 일들만을 두고 의원직을 사퇴할 건 아니었다. 동료 의원들에게는 미안하다. 선거 앞두고 내 거취를 두고 자꾸 당에 부담을 주는 지점들이 괴롭다. 힘을 보태야 할 때 분열하는 모습을 비춘다고 볼 수도 있을테니… 착잡하다."

- 사직서 제출 후 지도부 측에서 연락온 게 있나. 
"2일 의총에서 사직서 제출 발언을 한 후 김한길 대표가 와서 '다시 생각하시라'고 하더라. 의총이 끝난 후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의원들이 내 방에 와서 사직서 처리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만류하고 위로했다. 6일에 김한길 대표가 집까지 찾아온다고 해서 내가 의원회관으로 나와 김 대표와 만났다. 사직서를 철회하라고 강권하더라. 그러고는 본인이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찾아가 사직서를 찾아왔더라. 

여야간 합의가 안 되면 본회의에서 사직서 수리도 안 되는 판국에 사직서가 어디 있건 큰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탈당을 하면 내가 비례대표니 자동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텐데, 내가 탈당계를 내도 당에서 접수를 안 하고 가지고 있을 거 같더라. 사퇴하려 해도 방도가 마땅치않은 상황이다. 

사퇴하고 국회를 나가겠다는 내 의사는 확고한데, 국회는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나가기도 어렵더라. 그래서 7일에 의원들에게 서신을 쓴 거다. 이러나 저러나 사직 처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명을 해주면 최선을 다해 무소속으로 일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될 게 두려웠다. 이번에 약속을 안 지키면 두고두고 불명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의원들에게 사퇴하겠다는 약속 반만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 거다. 심사가 착잡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사퇴 의사를 꺾고 무소속을 유지하겠다고 말한 거처럼 썼던데 그건 오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내 뜻을 전하는 경험이 부족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 보도를 보고 개인적으로는, 정치인들은 인간적인 아픔을 드러내도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 8일 원내대표 선거에 참여했던데, 아직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건가. 
"어제 원내대표 투표에 참여한 걸 두고도 언론에서 비판하더라. 사퇴하기 전까지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따리 싸고 나가면 일 안하고 세비만 받는다고 뭐라 할 거 아닌가. 받은 세비를 반납하려고 해도 창구가 없다. 의원 신분이 유지되는 한 의정활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새 원내대표가 어떻게 하는지는 보려고 한다.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내 의지는 변함 없을 거다. 

내가 그만두는 것보다는 우리 방 직원들이 훨씬 마음에 걸린다. 못할 짓이다. 의원 잘못 만나서 4년 일할 걸 2년 만에 실직하게 됐다."

- 129명 새정치연합 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다운 야당이 됐으면 좋겠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당의 방향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새 원내대표가 잘해주시길 바란다. 시간이 가면서 이런 의지들이 희석된다면 야당이 해야 할 역사적 의무를 다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 당내 여러 안 좋은 관행을 빨리 벗어버려야 야당다운 야당이 될 수 있다. 당내 개혁과 제대로 된 야당의 역할은 함께 가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총·대선에 임했으면 좋겠다. 당이 바뀌고 좋은 야당으로서 역할을 꿋꿋하게 해나가면 결국 국민이 인정할 거다. 선거에만 연연하지 말고 당당한 당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