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세월호 참사는 한 마디로 ‘국가의 배신’, 깊게 갈아엎어 새로운 국가를 일구어야

몽유도원 2014. 5. 2. 08:16


죄인 된 심정으로 입을 엽니다. 지금 시기에 이 같은 입장을 밝히는 것이 과연 옳은지, 분수에 맞는 일인지를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국무회의 자리를 빌어 나온 대통령의 부적절한 사과와, 대통령의 그런 태도에 반발하는 유족들에게 ‘유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청와대 대변인을 보고 나서는 도저히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한 마디로 ‘국가의 배신’이었습니다. 대참사를 야기한 비극적 진실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고 있는 국민의 분노와 절망은 국가에 대한 당연한 기대가 온전히 무너져 내린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배신을 응징하는 길은 몇몇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고 대한민국의 토양 전체를 깊게 갈아엎어 새로이 일구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새카맣게 타버린 60년 묵은 낡은 불판을 갈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마땅히 살아있어야 할 수백의 무고한 목숨이 너무도 원통하고 허망하게 스러져 갔습니다. 아프게 스스로를 파헤치고 근본을 도려내야 할 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중히 요구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을 지십시오.

‘책임’이라는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세월호의 운항 책임이 선장에게 있듯이 대한민국호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호의 선장으로서 지금의 국가침몰사태에 대해 무겁게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국민 앞에 정중한 예를 갖춰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부하관료들을 모아 놓은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 앞에서 제대로 사과하십시오.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올바른 방식으로 사과하여 진실성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공개적으로 국정 마인드의 쇄신을 이룰 것을 천명하시기 바랍니다. 민영화, 영리화 그리고 규제완화로 드러난 신자유주의 노선과 시장만능주의의 국정기조를 포기하십시오.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선령 20년 연한을 폐기한 것이 이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더 이상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미명 하에 고귀한 생명이 위협당하는 괴물 같은 국가를 만들지 마십시오. 효율과 경쟁보다는 공동체의 미덕을, 돈과 기업의 이익 보다는 사람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상적인 국정기조로 전환할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국가안보의 낡은 관념들을 넘어서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의 안보관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청와대 안보실장의 ‘청와대 안보실은 재난구조 콘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은 국민에게 절망을 주었습니다. 글로벌스탠다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옳습니다. 시대에 맞는 안보 관념을 조속히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 관료사회의 적폐를 해소하십시오. 세월호 참사의 비극은 우리나라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와 대통령의 독선적인 관료중심 사고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관료사회를 개혁하십시오. 국가안전처의 신설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처가 없고 관료가 모자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기 ?문입니다. 국가안전처라는 뜬금없는 발상을 하기 전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수준의 분명한 관료 개혁 대책을 책임 있게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대통령은 대선에 개입하고 간첩을 조작해낸 국정원을 향해 셀프개혁을 요구했습니다. 관료제의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신뢰를 얻기 힘든 이유입니다. 세월호 사태에 책임 있는 관료 모두는 물론이고, 간첩조작사건의 남재준 국정원장을 즉각 파면하고 수사지시 함으로써 상징적인 의지를 보이기 바랍니다.

 

다섯 번째, 언론에 대한 부당한 통제와 간섭을 멈추십시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사회의 감시견이어야 할 언론의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언론을 사유화하려는 대통령의 잘못된 의지에 따른 결과입니다. 즉각, 언론간섭을 멈출 것을 천명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도통제지침을 만든 방통위와 방심위의 부적격 관료들을 전원 파면하기 바랍니다.

 

여섯 번째,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해 국가가 직접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인정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구조 및 수색작업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아직도 망망대해를 향해 눈물짓고 있는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 지원하기 바랍니다. 해경과 민간잠수업체 간의 불미스런 관계가 사실인지 국민 앞에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밀실 사과를 거부한 유가족들은 국민들을 향해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고 집단이기주의로 뭉쳐있는 정부와 관계기관을 향해 책임을 물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유가족들의 뜻을 분명히 따를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정성을 입증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정도의 정상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또 다른 눈가림과 편법으로 일시모면을 꾀한다면 그때야말로 국민의 직접적인 책임 요구를 피할 길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출마자 국회의원 원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