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복동 할머니가 국감장에 오셨습니다. - 정청래

몽유도원 2013. 10. 15. 15:52




<김복동 할머니가 국감장에 오셨습니다.>


131014 외교부 국정감사 오후 질의 

(참고인 김복동 할머니) 


정청래 의원(이하 정) : 김복동 할머님 저 봐주세요. 여기요! 접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정청래라고 하고요. 저희 어머니가 1921년생이고 제가 10남매 중에 10번째 막내입니다. 할머님은 몇 년생이십니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김복동 할머니(이하 김) : 범띠... 경인생이라고 하는데...


정 : 저희 어머니보다 몇 살 더 잡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라고 제가 호칭하면서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만 14세 때 1941년도에 군복공장에 취직시켜준다 하고 끌고 갔다고 하셨는데 맞죠?

김 : 네. 맞습니다.


정 : 1941년에 위안부로 끌려간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는거죠?

김 : 네


정 :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 교학사라는 교과서가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1944년부터 위안부를 끌고 갔다. 이렇게 애들을 가르쳐하고 있어요. 잘 못 된거죠?

김 : 그것은 아주 잘못됐죠. 정신대에 끌고 갔다고 한 것보다도 훨씬 앞에 갔는데요.


정 : 그리고요 교학사에서는 뭐라고 하냐면요,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 마다 따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렇게 교과서에 쓰고 있는데 잘못 된거죠? 끌고 갔죠?

김 : 끌고 갔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정 : 그럼 이 교과서는 잘 못 된 거고, 애들한테 뭘 가르치겠냐고 말씀하셨죠? 통탄할 일이죠? 잘못된 일이죠?

김 : 잘못된 일이죠! 당시 끌려갈 때는 위안부라고 끌고 갔습니까? 몇 십명씩 모집해라 그러니까 이런 소리는 안할 소리지만 조선 사람이 해당 됐다고 하는 말인데 그 당시에 행정은 조선인이 봤거든. 어느 집에 딸이있다 아들있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 : 어머님! 그런 사람들 보고 앞잡이라고 말했죠? 친일파 앞잡이...

김 : 그렇죠! 앞잡이들! 자기네들 일가친척을 빼니 사람 인원수가 모자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빽 없고 힘없는 농부 자녀들 나이 적던 많든 모조리 실어 갔습니다.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지 가고 싶어 간 것은 아닙니다.


정 : 그러면 그 때 친일 앞잡이들이 끌고 가는데 협조했는데 아까 말씀하실 때 박정희 대통령 때 해결됐으면 좋았을 텐데 안 됐으니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자리에서 한 말씀하세요.


김 : 박대통령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도 나라가 약해서 끌려갔으니까 대통령 뽑을 때는 우리 국민들이 잘 살게 하고, 외로울 때 도와주고 억울한 사람 밝혀주라고 대통령 뽑은 거 사실 아닙니까. 아직까지 이렇다 한 말이 없으니까 이제는 나이 많고 이 늙은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책임지고 우리 정부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대통령이 나서서 이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며, 말을 들으니까 미국하고 일본하고 합작해서 한국에 전쟁 하도록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온다... 어디 일본 놈들을 한국에 끌고 올 수 있겠습니까? 일본놈들 국기만 봐도 살이 떨리는데 만약 일본군이 한국에 발을 딛는다고 하면 우리 국민들 다 나설텐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홍준 위원장 : 김복동 할머님 그 말씀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 : 어머님! 박근혜 대통령께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머님께서 앉아 계신 그 자리가 외교부 장관이 방금까지 앉았다 갔던 자리에요. 아직 박근혜정부 들어서 장관한테 만나자, 위로한다 그런 말 아직 못 들어 보셨죠? 

김 : 네


정 : 그럼 이 회의 끝나고 장관실이 바로 옆방에 있어요. 제가 만나게 해드릴 테니까 장관한테 하고 싶은 말 조금 이따가 하세요. 그 말씀 하시려고 이 자리에 나오신 거잖아요.

김 : (웃음) 그렇죠. 네


정 : 앞으로 자주 모실테니까 자주 나오시겠습니까?

김 : 오죠. 오죠, 해결 날 때까지 오겠습니다. — 정청래님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