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발 속에도 독도 주장 못하는 외교부, 존재이유가 뭐냐!
외교부, 출입기자단 독도방문 비보도요구 '국익' 논란
"불필요하게 일본자극,국익에 도움 안돼" vs"일본 도발상황에서 일상 행사까지 눈치보는 건 저자세"
입력 : 2013-08-01 17:37:26 노출 : 2013.08.01 19:53:45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외교부가 출입기자단을 데리고 독도를 방문해 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외교부가 비보도를 전제로 독도 방문 행사를 결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6월 "8월 8일~10일 간 독도 워크샵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60여명의 외교부 출입 기자단에게 독도 일정을 문자로 통보했다. 독도 방문 경비는 기자 개인 부담은 없고 정부 예산으로 충당돼 기자 개인당 약 30만 상당의 경비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는 특히 독도 워크샵 내용에 대해 "독도방문, 전문가 간담회, 울릉도 시찰 및 독도 박물간 관람 등 예정이며 비보도 전제 행사"라며 기자들에게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행사 내용을 보면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맞서 독도의 역사와 국제법 등을 기자들과 논의해보자는 '워크샵'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기자단 소속 한 일간지 기자에 따르면 독도 방문 일정에는 외교부 소속 국제법 연구자, 관련 공무원, 동북아 재단 관계자 등 영유권 문제에 대해 전문가 집단이 참여해 기자들을 상대로 강의 및 토론을 하는 행사가 잡혀 있다. 외교부 담당 기자들에게 독도 문제의 전문성을 공유해 향후 '정확한' 언론 보도로 연결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독도의 전경
외교부 출입 기자단 소속 기자들도 이번 독도 방문은 '공부'의 의미가 강하다는 입장이다. A기자는 "세미나에 참석하면 국제 해양과 관련된 지식도 배우고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하는데 실제 뒷받침하는 근거를 잘 알고 기사를 쓰는 것이 좋다. 정부 입장에서도 기사를 쓸 때 명확하게 이해하고 정확한 기사를 쓰는 게 국익에도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기자들이 독도를 방문해 이 같은 세미나를 개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기자단과 협의해 비보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한일관계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을 잇따라 쏟아내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 나치식 개헌'을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동아시아컵 축구 한일 응원전에 내걸린 양국의 플래카드 논란과 관련해서는 시모무라 하쿠분문부과학상이 "그 나라의 민도가 문제될 수 있다"고 발언해 대한축구협회와 외교부가 반발하는 등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일본의 극우주의 움직임을 지적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같이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독도 방문 세미나 소식은 불필요하게 감정을 자극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외교부의 주장이다.
외교부가 비보도를 결정한 배경에는 일본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전략상 고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과 27일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방문해 "한국과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국민 정서상 한일 정상 회담 제안을 받는 것은 용납이 안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취임 첫 한일 정상회담 개최 기회를 박차버리면 집권기간 내내 한일관계가 냉랭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청와대가 한일 정상회담 제안에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사정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최소 전제 조건은 8.15 광복절에 일본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지난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이뤄질 때 공동 번영의 미래도 열어갈 수 있다"(3. 1절 기념사)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런데 만약 일본 정치인들이 종전을 기념한다며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경우엔 한일정상회담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부 출입 기자단의 영유권과 관련한 독도 방문 및 세미나 개최 사실이 알려지고 관련 보도가 나오면 전략상 일본에게 외교적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출입 B기자는 "안보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비공개로 국방부가 백령도에 가고 통일부가 국정원에 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며 "이번 비보도 경위는 굉장히 한일관계가 좋지 않고 8월이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보도가 될 경우 번거롭고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불필요한 감정 싸움이 될 수 있다고 외교부가 판단했고 기자단도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서 독도 현장을 보는 것이 이후 관련 기사를 쓴 것에 많은 도움이 되고 분쟁이 생길경우 기사로 소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외교부 출입 C기자는 "다른 부처에서도 안보 관련 행사를 가지만 비공개를 특별하게 부탁하지 않는다"며 "외교부가 8. 15를 앞두고 외교부 주최로 독도를 방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비보도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난해에도 독도를 방문했는데 일본 외신 기자들이 공개 브리핑을 통해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외교부에서 우리 내부 행사인데 왜 관여하는냐고 따져는데 관료 특성상 올해는 굳이 내부 행사를 알려주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1일 통화에서 "외교부가 독도를 방문하고 기자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여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업무인데 외국의 눈치를 봐야 하나"라며 "현재 일본이 도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상적인 업무가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스스로 일본에 대해 저자세로 검열하는게 아닌가 싶다. 보기에 민망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