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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 만화 ‘조선왕조실록’ 10년 만에 완간

몽유도원 2013. 9. 9. 08:52


경향신문






박시백 화백, 만화 ‘조선왕조실록’ 10년 만에 완간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입력 : 2013-07-22 21:43:32ㅣ수정 : 2013-07-22 21:43:32 


박시백 화백(49)이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을 만화로 옮기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0년이었다. 이듬해 그는 신문 광고에서 본 몇 백만원짜리 <국역 조선왕조실록> 시디롬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그는 박재동 화백의 뒤를 이어 시사만평을 그리던 한겨레를 떠났다. <실록>을 무작정 공부하고 구성하고 습작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1권 ‘개국’편이 나온 이후 10년이 흘렀다. 이 방대한 교양만화 시리즈는 22일 나온 20권 ‘망국’을 마지막으로 완간됐다. 500년 역사, 2077책의 방대한 기록을 혼자 정리했다. 문하생도 없이 자료 수집, 콘티, 스케치, 채색을 혼자 했다. <실록>을 완독하며 정리한 노트만 121권이다.

<실록>에 근거하다보니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은 <실록>이 부실할 때 닥쳤다. 박 화백은 “임진왜란 때와 일제의 침략이 있었던 1900년대 이후 기록이 부실해져서 그 외 다른 참고자료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따져보면 모두 망국의 기운이 감돌 때다. 그는 “나라가 어려우면 기록이 부실해진다”고 설명했다.

박시백 화백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왕조실록이 정말 위대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휴머니스트 제공

연재 기간이 오래된 만큼 작업의 성격도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실록>에 바탕을 둔 조선왕조사를 알린다는 게 목적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실록> 자체를 알리겠다는 야심이 커졌다. 야사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실록>의 정사를 누르고 진실인 양 행세하는 모습은 참기 어려웠다. 그는 만화 특유의 재미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야 할 사명의식을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극 영화·드라마의 과장, 오류는 아쉽다. 예술적 상상력이 개입하는 것 자체야 문제삼을 수 없겠지만, 그 상상력이 <실록>이라는 탄탄한 자료에 기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그는 요즘 사극들이 “야사와 <실록>을 절충해서 쉽게 만드는 것 같다”며 “대중문화 창작자들이 볼만한 <실록> 연구 성과가 더 활발하게 나와야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실록>에서 만나고 정리한 500여명의 사람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정도전이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란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그 시대의 현실에 기초해서 그 시대를 좀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자기의 이상과 현실과 결합해서 이뤄내는 사람”이라고 보는데 정도전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반면 왜란, 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는데도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수습에도 치열하지 않았던 선조, 인조는 ‘짜증났던 인물’로 꼽았다.

박 화백은 “약간 섭섭하고 90% 홀가분하다”고 완간 소감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의 정리된 노트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조선왕조 연표’를 만들어낸 뒤 “<실록>과 진정한 안녕을 고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