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규직화 꿈을 싣고 희망버스는 울산에 왔다

몽유도원 2013. 7. 22. 21:18



게시 시간: 2013. 07. 22.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이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염원하며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왔다. 희망버스가 도착한 지난 20일은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출신(해고자) 최병승·천의봉 씨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한 지 277일째였다. 희망버스와 민주노총이 대규모로 이곳을 찾은 것은 올 1월 두 차례에 이어 세 번째다.


이시우 기자 | hbjunsa@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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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에 이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염원하며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왔다. 희망버스가 도착한 지난 20일은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출신(해고자) 최병승·천의봉 씨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한 지 277일째였다. 희망버스와 민주노총이 대규모로 이곳을 찾은 것은 올 1월 두 차례에 이어 세 번째다.


20일 오후 6시 울산시 북구 명촌동 명촌주차장(현대차 울산공장 3공장 맞은편)에는 전국에서 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명촌주차장 송전철탑에는 최병승 씨 등 2명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이른바 '몽구산성'이 쌓여 진입이 어렵고, 공간이 좁아 집회를 하기에도 어려운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대신 이곳에서 집결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날 오후 6시 40분께 대열이 정비되자마자 고공농성장 맞은편 현대차 3공장 철제펜스 담장으로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대로 공장 내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외쳤다.




또한, 지난 15일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금속노조 현대차 아산 사내하청(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인 박정식 씨 죽음을 두고 "정몽구 회장과 사측이 사과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 일부는 고공농성장 주변 만장대로 사용된 대나무를 손에 쥐었다. 이른바 '공장 진입 투쟁'이 시작됐다. 철제펜스 안쪽 공장 안에는 현대차 관리자와 용역 경비들이 이중 삼중으로 지키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공장 진입에 맞서 관리자와 경비들은 자체 소방설비로 물대포와 소화분말기를 뿌리며 격하게 막아섰다.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2006년 3월 말 공장 안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던 지엠대우 창원공장 정문 앞 대치 상황을 다시 보는 듯했다. 하지만, 맞선 양측 규모는 2006년 창원의 몇 배였다.


양측이 격렬한 충돌 과정에 참가자들이 밧줄을 묶어 철제펜스 6∼7개를 뜯었다. 오후 7시 30분께 바로 옆에서도 철제펜스 2∼3개가 뜯겨나갔다. 이렇게 철제펜스 담장이 뜯겨진 곳에서는 집회 참가자와 관리자·경비요원이 곧바로 마주하게 됐다. 그러자 참가자를 향한 공장 안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 분사는 더 심해졌다. 이곳 관리자와 경비요원들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방패와 철제로 보이는 막대기를 들고 막아섰다. 이날 뜯겨 나간 철제펜스 길이는 30m가량 됐다.


오후 8시께 참가자들은 3500여 명으로 늘었지만 뿌연 소화기 분말로 명성주차장 전체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일부 참가자들이 물병을 던지자 공장 안에서는 물병과 함께 돌이 참가자에게 되돌아왔다. 물대포는 기자와 집회 진행자가 있던 방송차량을 겨냥해 수차례 뿌렸다.


오후 8시 30분께 양측 충돌을 지켜보던 경찰이 해산 요구 선무방송을 끝내고서 시위대 왼쪽에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시위를 중단하라는 경찰의 위협성 신호였다. 오후 9시께 진행자는 만장대를 들고 공장 진입 시도를 하던 이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했다. 이후 소강상태가 지속됐다.


곧바로 경찰은 관리자와 경비가 지키던 뜯겨 나간 철제펜스 쪽으로 경비 인력을 투입했다. 참가자와 경찰이 맞선 상황에서 더는 충돌은 없었다.


오후 9시 15분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박현제 지회장이 방송 차량으로 올라왔다. 박 지회장은 "이렇게 전국에서 한걸음으로 달려와 박정식 열사의 한을 풀고자 힘있게 싸워줘서 고맙다.


박 열사의 한을 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다시 한 번 공장 안에서 라인을 끊고 열사 염원인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 최고의 차를 만드는 회사가 저런 모습이다. 온 공장에 용역 깡패들이 깔렸고, 온 담벼락에 철조망이 감고 있다. 이곳이 감옥이지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이냐"면서 "모든 사내하청노동자가 똘똘 뭉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 우리도 박정식 열사를 기억하며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겠다"고 했다.


잠시 휴식을 한 뒤 참가자들은 고공농성 철탑 아래에 마련된 무대로 모였다.


철탑 문화제 첫 발언은 희망버스 기획단 박점규 씨(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가 시작했다. 박 집행위원이 "오늘 회사에서 희망버스 대표단을 만날 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러나 대화가 아니라 항의 서한 전달 정도를 받겠다고 했다. 우리는 필요없다고 했다"고 말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오늘 충분히 싸우지 못했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우리 분노를 회사에 전달했다"면서 "회사가 전향적 자세로 교섭에 나와서 태풍이 오기 전에 두 노동자가 안전하게 내려오도록 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희망버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저로 말미암아 꿈과 희망을 놓지 마라"는 당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정식 씨에 대한 추모사도 이어졌다.


금속노조 현대차 아산 사내하청지회 홍영교 지회장은 "2010년 대법원 판결이 나고서 노동조합에 가입했지만, 그는 1년이 지나고서 사무장을 맡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대오 맨 앞에서 싸웠다. 그런 그였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며 "술을 좋아하는 우리 사무장 술 한 잔 진하게 사 주지도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도 얘기 한 번 제대로 못 들어줘 미안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홍 지회장은 "열사를 제대로 보내주려면 우리가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 24일 아산공장에서 울산·전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한다. 저들을 향해 함께 싸우자"고 권했다.


이후 원로 민주인사인 백기환 씨의 투쟁사가 이어졌다.


이날 철탑 문화제에는 밀양 765㎸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중인 밀양 4개 면 어르신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이 참여해 힘을 모았다. 밀양 어르신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을 얘기했는데, 이런 전쟁터가 어디 있나. 서로 힘을 모으고 희망을 주고받자"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지난번 창원 촛불문화제에서 선보인 '흙에 살리라' 개사곡을 합창했다.


철탑문화제는 다음날인 21일 오전 2시까지 이어졌다.


20·21일 이틀간 희망버스에는 3500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30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상당수 참가자가 밤사이 귀가했다.


남은 참가자들은 21일 오전 8시 50분 희망버스 참가단 기자회견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전국 각지로 향했다.


한편, 현대차 사측과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금속노조 중앙 등 교섭위원 20여 명으로 꾸려진 특별교섭단은 2010년 7월 22일 최병승 씨 정규직 인정 대법원 판결 이듬해인 2011년부터 16차례에 걸쳐 본교섭을 진행했다. 7월 들어 두 차례 실무교섭을 했지만 간극은 줄지 않았다.


현대차 불법 파견 해소 방안으로 사측은 '2016년까지 직접 생산공정 3500여 명 단계적 신규 채용'을, 노측은 '직접 생산공정에 일하는 모든 공장 내 비정규직(약 8500명)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특별 교섭과 별도로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노동 관련 법 조항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특히, 지난 6월 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강성노조에 양보는 없다"고 발언 뒤부터는 교섭이 완전히 교착 상태에 빠졌다.


20일 3시간여의 양측 충돌로 희망버스 기획단은 참가자 20여 명이 상처를 입어 병원 치료를 받았고, 7명이 경찰에 연행돼 불구속 입건되고서 풀려났다고 밝혔다. 현대차 사측은 관리자와 경비요원 4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경찰도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